생각

내가 퇴사한 이유

김 Duke 2023. 1. 3. 01:38

작업치료사로 약 2년간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와 감정낭비는 나를 좀먹고 있었다.

 

병을 갖게되어 예민한 환자들, 뒷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매 순간 평가받는 기분이 들고 긴장하게 되는 치료실

내가 퇴사하기까지 많은 이유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컸던 것은 내가 내 일에 자부심을 갖기가 어려운 구조였다.

 

뇌졸중으로 편마비가 온 환자가 있었다.

환측의 마비로 인해 서있을 수 없고 팔을 들어올리기 힘든 상태로, 독립적인 일생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특히 환자분께서는 초기 인터뷰에서 낯선 병원에서의 생활, 그리고 간병 여사님의 도움을 받아야만 볼 일을 볼 수 있는 것에 대해 힘듦을 토로하셨다.

 

 

환자분이 병실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병실에서의 활동을 위주로 치료시간을 사용했다.

그 결과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을 독립적으로 이용하기, 침대에 걸터앉아 신발 신기, 환측 손으로 캐비넷 닫기 등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갔다. 환자분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신나서 얘기하는 날이 많아졌고, 좋아질 수 있을거란 믿음이 생기면서 치료시간에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노력하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병원, 병실에서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셨다.

 

 

환측 상지에 힘이 들어오면서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누워서 관절을 움직이는 것을 시작으로 치료사의 저항을 버티고 밀어내는 운동을 통해 관절의 안정성을 키웠고 앉아서 빈 페트병에 물을 채워가며 들어 올리면서 열심히 운동하셨다. 나이가 많으셨지만, 운동을 꾸준히 하셨던 분이기에 회복 예후가 눈에 띌 정도로 좋았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서 환자분에 대해 공부하고 더 좋은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환자분이 써주신 편지

 

하지만 근력이 좋아지는 것과 기능이 좋아지는 것은 별개였다. 힘은 점점 생기지만, 기능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재활이 필요했다. 환자분께서는 아프기 전의 신체 기능이 빠르게 회복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우울감을 느끼셨고 빨리 퇴원을 못하는 것에 대해서 종종 눈물을 보이셨다.

 

갑자기 얻은 뇌졸중으로 인한 편마비를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셨지만, 속상하지 않을 순 없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니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치료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느리지만 회복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우울감에 휩싸이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좋은 얘기를 많이 해드리고, 힘을 내시면 치료하기를 반복했다.


 

팔과 손을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운동 중 하나

 

어느덧 환자분은 팔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뻑뻑한 집게를 이용해서 눈 높이에 있는 작은 물건들을 집어 옮길 정도로 근력, 관절의 협응, 그리고 움직임이 좋아졌다. 

 

 

아프시기 전 만큼의 신체 기능이 나오진 않았지만, 일생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의 수준이 되셨다. 밖에 나가서 생활하셔도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끔 움직임의 디테일을 더 높이기 위한 치료를 하고 있었다.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하셨는지, 꽃잎 떨어지면 퇴원한다고 노래를 부르시다가 4월 말쯤 퇴원하셨다.

 


 

환자분이 회복할 수 있었던 정신적, 신체적 그리고 환경적인 회복 요인
  1. 꾸준히 운동을 한 건강한 신체
  2. 건강한 정신
  3. 퇴원을 향한 강한 동기부여
  4. 그에 따른 노력
  5. 치료사들의 노력

 

중추신경계 손상 환자들에게는 회복 예후라는게 있다. 나이가 먹으면 젊을 적에 비해 상처가 늦게 아물 듯이. 위 환자분은 회복 예후가 좋았다.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신체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많은 환자들이 회복 예후가 좋지 않다.

 

좋지 않은 회복 예후에 대한 요인
  1. 많은 나이
  2. 관리하지 않은 몸
  3. 우울감

 

좋지 않은 회복 예후를 가진 환자들은 치료하다보면 확실히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을 믿고 치료효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치료에 들이는 노력(인풋)에 비해 결과(아웃풋)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는 내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무리 공부를 하고 적용을 하더라도 아웃풋이 나오지 않는다면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나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내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기가 어려웠다.

 

 

여기에 익숙해지면 환자들에게 '나에게 치료를 받고 나니 좋아졌다',  '치료 해줘서 고맙다' 등의 피드백을 받더라도 '정말 내가 잘해서일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환자들을 평가할 순 있어도, 그게 어떤 이유인지, 누가 잘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아웃풋이 안나와도, 나와도 내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가 힘든 구조이다.

 

 


 

위의 이유로 퇴사를 고민하던 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였다.

처음에 든 생각은 높은 연봉, 좋은 업무 환경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걸로 내 직업을 고를 순 없었다. 더 깊은 생각을 위해 강의를 보다보니 외부 환경에 대한 조건이 아닌 본질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것

 

노력하면 아웃풋이 나오는 일을 하고 싶다.

 

성취감을 얻으면서 내 일에 자부심을 갖고 싶다.

 

환자들을 대하며 감정낭비 하는 것은 그만하고 싶다. 이왕 싸울거면 컴퓨터랑 싸우고 싶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보면 긴장하는 편이다 .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그래서 논리적인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몇 가지 결론에 도달했고 몇몇 직업을 알아보던 중 개발자를 알게 됐다. 생소하기도 했고, 어려워보이기도 했다. 그러면 "일단 맛만 보자" 라는 생각으로 HTML, 약간의 CSS로 웹페이지를 만드는 유튜브 강의를 듣게 됐고, 유레카를 외쳤다. 내가 잘하면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을 느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apple에서 제공하는 Swift Playground를 해보았다. 몇 시간씩 집중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개발자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고 이직의 불꽃을 키울 수 있게 됐다.